세계철학사 (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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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철학사 | 이정우 | 길 예전에 왜 모든 과목의 박사학위를 Doctor of Philosophy(Ph. D.)라고 하는지 설명을 들었어도, 마음 한 편엔 "그래도 모든 학문을 철학이라고 보는 건 좀 억지 아닌가?"하는 의문이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야 그 의문이 자연스럽게 해소가 되었다. 모든 학문은 철학에서 나왔고, 여전히 철학이라고 볼 수 있구나. 1권을 몇 년에 걸쳐 겨우 다 읽었는데, 초반에는 생소한 개념과 용어들이 계속해서 나오다보니 어렵고(용어가 그리스어인 게 어려움을 배가한다) 뒤로 갈수록 개념 자체가 난해해져서 어렵다.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초반에는 용어를 따로 노트해 가며 읽었고, 후반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개념은 건너뛰면서 읽었다. 꽤 많은 부분을 건너뛰었고 제대로 읽었다고 해도 이해가 될 듯 말 듯한 부분이 많았다. 전체로 보면 이해도가 절반에도 못 미칠 듯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읽은 것의 의미는 크다고 느껴진다. 철학 책이 아닌 철학사 책이기 때문에 사상의 큰 흐름을 파악하기만 해도 절반의 성공 아닌가 싶은 것이다. 이제 2권 중반을 읽고 있는데, 2권은 중고등학교 시절 겉핥기 수준도 안 되게 배운 동양철학을 체계적으로 배워나갈 수 있어서 매우 뜻깊다. 제대로 배운 적은 없어도 우리 사회 면면에 깃들어 있는 역, 기, 도 등의 사상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중국의 역사와 사자성어에 나오는 인물들을 공부하는 것도 재미있다. 하지만 역시나 상당히 어렵고 오래 걸리기도 해서 4권까지 완독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 싶은데, 도전하는 마음으로 계속 가봐야겠다.

사라진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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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것들 | 앤드루 포터 | 문학동네 사라진 것들에 관한 이야기다.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흐르면서. 젊은 시절의 기운, 무모함, 높은 엔트로피, 정열적인 사랑, 이런 것들이 사라져 간다. 아내, 아이, 집, 직업같이 생겨나는 것도 있지만. 주인공들이 모두 내 또래인 사십 대 초중반이어서 더 공감이 간 것도 같다. 똑같이 불안하지만 이십 대 때와는 결이 다른 주제의 불안들. 그렇게 친했던 친구들인데 이젠 낯설게 느껴지는 이 기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라던가, 분명 많은 게 채워졌는데 마음은 조금도 채워지지 않은 듯한 허탈함이라든지. 열 다섯 편의 주인공들 모두 친근하게 느껴졌다. 작가의 대표작인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보단 이 책이 훨씬 좋았고, 유일한 장편인 '어떤 날들'도 꽤 재밌게 읽었다. 올해 출간된 'The Imagined Life'도 번역본이 어서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Schumann - Dichterliebe : Fritz Wunderl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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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곡을 많이 들어보진 않았지만, 다른 곡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데 오로지 이 음반만 몇십 년째 계속 듣게 된다. 비행기를 탈 때면, 모아둔 7백여 곡의 MP3를 항상 셔플로 듣는데, 이번 밀라노행 비행기에선 분덜리히의 목소리가 너무 아름다워서 셔플을 멈추고 한참을 정주행했다. 피셔 디스카우도 말고, 분덜리히가 부르는 시인의 사랑을 꼭 한 번은 들어보시길.

감사

감사할 일이 수 만 가지 있더라도 내 마음 상태가 별로면 감사할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더라도 내 마음이 좋으면 감사할 것 들이 생각난다. 가진 것이 많아도 감사하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들은 마음이 가난한 것이니, 뭐라 할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다는.

상현

음악을 듣다가 너무 좋아서 누군가에게 얘기하고 싶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친구 내 가장 부끄러운 모습을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친구 그 어떤 말도 찬찬히 들어주었던 친구 약속시간에 늦는 게 잘 안 고쳐지던, 그때마다 미안해 하던 친구 다른 사람을 나쁘게 얘기하는 법이 없던 친구 '9와 숫자들'을 들어보라며 알려주었던 친구 사진 찍는 걸 좋아하던 친구 내 어두운 면을 가장 잘 공감해 줄 수 있던 친구 이 블로그의 아마도 유일한 애독자였던 친구 생각해보면 항상 고마웠던 친구 술 한 잔 하고 싶구나.

소유냐 존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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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냐 존재냐(삶이냐) | 에리히 프롬 | 동서문화사 *이 책의 영어 제목은 "To Have or to Be?"인데 국내에는 to be가 존재와 삶 두 가지로 번역되었다. 그냥 영어로 생각하는 편이 잘 와닿는 것 같다. 책의 초반부를 읽으며, 요즘 계속하던 고민의 답을 찾은 것만 같았다. "소유로 만족을 얻을 순 없다. 존재에서 답을 찾아야겠다." "많이 가지고 많이 이룰 수록 가진 것을 포기하기가 더 힘들어지는 것 같다. 지금의 회사에서 점점 더 힘들어졌던 게 바로 이 맥락 아닐까." 초반부에서 기억에 남는 대목과 감상은 대략 이러하다. 존재는 계속 뭔가 일어나는 '과정'이다. 살아가는 것은 소유가 아닌 존재의 형태와 성질을 가지고 있다. 미술품을 갖는 것이 아니라 작품으로부터 무언가 느낄 수 있는 것이 중요하고, 음반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소유 관점의 학습이고, 수업을 통해 내가 변화되는 것이 존재 관점의 학습이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와 대화하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존재 관점의 독서이다. 회사에서 도구처럼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뭔가를 이뤄나가려고 하는 것이 존재다. 돈을 벌기 위해 일 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것 자체가 값진 경험이 되어야 한다. 내가 이룬 것 보다 이뤄나간 과정이 더 소중하다. 부와 명성, 나를 있어 보이게 하는 것들은 그 자체로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그것들을 통해 어떤 것을 느끼고 경험하고 어떤 과정을 만들어 갈 것 인지가 중요하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책이 널리 읽혔음에도, 핵심 사상이 불교를 통해 수 천 년 간 설파되어 왔음에도 소유 중심의 사고를 가진 사람이 절대 다수라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책에서 얘기하는 새로운 사회는 영영 오지 않을 것 같다. 나 역시 소유가 중요하고 자본이 중심이 되는 삶을 너무도 당연시해왔다. 이 책을 읽은 뒤로 내 중심을 소유에서 존재...

리더란 방향을 정하는 사람

 리더는 다양한 역할을 해내야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방향을 정하는 역할이다. 다른 걸 다 못 해도 이것 하나만 잘 할 수 있으면 그 사람은 괜찮은 리더가 될 수 있다.  무거운 짐이 있는데 이 짐을 어디로 옮겨야 돈을 벌 수 있는지 판단을 하는 사람이 리더다. 어떻게 옮길지는 그 다음 문제이다. 방향만 정해지면 동수던 삼식이던 속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옮기긴 옮긴다. 하지만 아무리 빨리 옮긴다 한들 부산으로 가야할 짐을 인천으로 옮기면 돈을 한 푼도 벌 수 없다.  스타트업에선 목표설정과 성과측정을 KPI가 아닌 OKR로 많이 하는데,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 둘의 핵심적인 차이가 바로 방향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가 이다. KPI가 얼마나 짐을 잘 옮겼는 지에 초점을 맞춘다면, OKR은 어디로 옮겨야 하는 지를 더 중요하게 다룬다.  팀의, 조직의, 회사의 방향을 잘 정하는 것은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다. 그냥 보기에도 어려워 보이지만, 직접 해보면 상상 이상으로 어렵다는 걸 체감하게 된다. 너무 어려워서 도저히 못 정할 것 같은 때도 있지만, 피할 수도 없다. 리더라면 어떻게든 정하고 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책임도 져야 하고.

결혼

내게 너무나 잘 해줄 것 같은 사람이 아니라, 내가 정말 잘 해주고 싶은 사람과 하라. 왠지 해야할 것 같아서가 아니라 꼭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하라.

사랑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가 내게 잘 해줄 때 보다 내가 그에게 잘 해줄 때, 더 커진다. 신기하게도.

Gabriel Fauré - Requi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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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휘: Philippe Herreweghe *연주: La Chapelle Royale 학생 때는 이 곡을 좋아하는 선배들을 이해하지 못 했었다. 너무 지루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십수년 이상이 흘러 얼마 전에 우연히 다시 듣게 되었는데, 마음이 참 평안해졌다. 레퀴엠 치고는 너무 어둡지도 않고,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힘이 느껴졌다. 세월이 지루함을 차분함으로 바꾸어 줬나 보다.

코맥 매카시 - 국경 3부작 (모두 다 예쁜 말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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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경 3부작 | 코맥 매카시 | 민음사 한국에는 비교적 덜 알려졌지만 미국 문학의 거장 중 한 사람인 코맥 매카시의 대표작이다. 세 작품은 매우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세 이야기 모두 처절하고 잔인하지만 아름답다. 차원 문을 열고 완전히 다른 세계로 빨려 들어간 듯한 경험을 '백년의 고독' 이후 두 번째 할 수 있었다. 세 작품이 마음에 드셨다면 '핏빛 자오선'도 추천한다. 국경 3부작 보다도 더 잔인하고 황량해서 꽤 힘들게 읽었지만, 두고두고 생각이 나는 건 세상이 실제로 그러하기 때문 아닐까 싶다. [모두가 예쁜 말들] 텍사스에 살던 두 소년이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목적 없이 말에 올라 멕시코로 향한다. 굳이 도착한 멕시코에서 안 해도 될 고생을 죽도록 하고는 빈 손으로 고향으로 돌아온다. 무모함으로 가득 찬, 힘들기만 하고 남은 건 없는 그 시간이 일편 부럽기도 한 까닭은 무엇일까. [국경을 넘어] 고생고생해서 늑대를 잡더니, 늑대를 고향으로 돌려보내 주겠다고 멕시코로 향한다. 늑대를 잡는 장면의 묘사가 압권이었다. 읽고 있자면 사람보다 늑대가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평원의 도시들] 앞선 두 편의 주인공이 함께 나온다. 다른 두 작품에 비해서는 전체적인 줄거리에 개연성이 있는 편. 오히려 그래서 특유의 매력이 덜 느껴졌던 아이러니. 한편 이 대화는 국경 3부작의 한 줄 요약 같이 느껴졌다. 존 그래디: "거기 사람들은 무조건 집에 숨겨 줘요. 내가 없다고 거짓말도 하고요. 하지만 무슨 짓을 했는지는 결코 묻지 않죠." 빌리: "나는 저기 세 번 갔었지. 하지만 한 번도 원하는 것을 찾아서 돌아오지 못했어."

인간 실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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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실격 | 다자이 오사무 | 민음사 20여년 전에 처음 읽었을 때 정도의 충격은 없었습니다만, 나만 이런 게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과, "난 그래도 저 정도는 아닌데" 하는 위안은 여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사회성이 아무리 뛰어나 보이는 사람도 이 책의 주인공과 닮은 구석이 아예 없지는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MBTI의 I와 E 성향이 100:0으로 나오지는 않는 것 처럼요. 책에서 얘기하는 인간으로서의 실격에 대한 점수를 매긴다면 여러분은 몇 점이 나올 것 같으신가요? 대목대목에서 아래와 같은 공감을 느끼며, 저는 여전히 높은 점수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아무래도 인간을 단념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주에 결혼식에 갔었습니다. 식권까지 받았지만 한 무리의 지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워서 조용히 나와 혼자 라면을 사 먹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모르는 사람에게 불쾌감을 느끼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저에겐 인간, 그리고 관계가 무척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을 포기할 수는 없어서 더 어렵습니다. "저는 화를 내는 인간의 얼굴에서 사자보다도, 악어보다도, 용보다도 더 끔찍한 동물의 본성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 화를 내는 모습은 제게 극도의 스트레스입니다. 그 화가 절 향한 게 아니더라도요. 옆자리 동료가 업무 전화를 하는데 언성이 높아지기만 해도 마음이 움츠러들고 경계태세가 됩니다. 난 왜 이 모양일까, 보호막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었습니다. "검사의 그런 조용한 모멸과 맞닥뜨리느니 차라리 십 년 형을 구형받는 편이 나았다고 생각할 때 조차 가끔 있을 정도입니다." 거짓을 들켰을 때의 이 마음, 너무도 공감이 갑니다. 며칠 씩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자괴감을 느끼게 되는..

이처럼 사소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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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사소한 것들 | 클레어 키건 | 다산책방 클레어 키건의 대표작은 '맡겨진 소녀'라고 하는데 나는 이 책이 훨씬 더 좋았다. 짧지만 섬세하고 정성스러운 글이다. 거친 일을 하는 아저씨 주인공의 복잡한 마음을 너무도 세밀하게 잘 그려냈다. 추운 겨울, 다소 황량한 배경, 서로 보듬을 여유가 없는 사람들 속에 꺼질 듯 위태롭게 살아있는 불씨를 잘 포착해내었다.

잘못 걸려온 전화, 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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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못 걸려온 전화, 어제 | 아고타 크리스토프 | 까치, 문학동네 대학생 때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이 너무 좋아서 비슷한 느낌의 작가를 찾으려 수소문했으나 실패했던 경험이 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를 읽으며 카버의 느낌이 들었다. 무뚝뚝하고 서늘한데 묘하게 위로가 되는 느낌. 대부분 이게 뭐가 비슷해? 할 것 같지만, 난 그랬다. 그러고 보니 서점에서 우연히 꺼내 들었다가 몇 페이지 만에 훅 빠져들어 사서 읽게 되었던 것도 비슷하네. 두 작가 모두 고난스런 젊은 시절을 보내며 겪은, 힘든 마음이 묻어나오는 느낌이 비슷한 걸까?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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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 벵하민 라바투트 | 문학동네 이해할 시도조차 못 해봤던 양자역학에 대해 맛뵈기 수준이나마 배울 수 있었다. 불확정성의 원리라는 게 인류 지성사에 새 장을 열었다는 것. 철학에서 시작해 꽃을 피우고 한 때 영광을 독차지했던 과학이 결국 홀로 찬란할 수는 없다는 것. 공학을 전공했지만 문학을 편애하는 내게, 과학을 문학으로 소화시켜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