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인간 실격 | 다자이 오사무 | 민음사
20여년 전에 처음 읽었을 때 정도의 충격은 없었습니다만,
나만 이런 게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과,
"난 그래도 저 정도는 아닌데" 하는 위안은 여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사회성이 아무리 뛰어나 보이는 사람도 이 책의 주인공과 닮은 구석이 아예 없지는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MBTI의 I와 E 성향이 100:0으로 나오지는 않는 것 처럼요. 책에서 얘기하는 인간으로서의 실격에 대한 점수를 매긴다면 여러분은 몇 점이 나올 것 같으신가요? 대목대목에서 아래와 같은 공감을 느끼며, 저는 여전히 높은 점수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아무래도 인간을 단념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주에 결혼식에 갔었습니다. 식권까지 받았지만 한 무리의 지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워서 조용히 나와 혼자 라면을 사 먹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모르는 사람에게 불쾌감을 느끼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저에겐 인간, 그리고 관계가 무척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을 포기할 수는 없어서 더 어렵습니다.
"저는 화를 내는 인간의 얼굴에서 사자보다도, 악어보다도, 용보다도 더 끔찍한 동물의 본성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 화를 내는 모습은 제게 극도의 스트레스입니다. 그 화가 절 향한 게 아니더라도요. 옆자리 동료가 업무 전화를 하는데 언성이 높아지기만 해도 마음이 움츠러들고 경계태세가 됩니다. 난 왜 이 모양일까, 보호막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었습니다.
"검사의 그런 조용한 모멸과 맞닥뜨리느니 차라리 십 년 형을 구형받는 편이 나았다고 생각할 때 조차 가끔 있을 정도입니다."
거짓을 들켰을 때의 이 마음, 너무도 공감이 갑니다. 며칠 씩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자괴감을 느끼게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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